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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해마의 역할과 기억력과의 관계

해마란 무엇인가? 뇌 속의 기억 저장소

해마(hippocampus)는 대뇌 변연계의 일부로, 관자엽(측두엽) 깊은 곳에 있는 해마체 구조이다. 이름은 그 모양이 바다 말(hippocampus)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으며, 인간의 뇌 양쪽에 각각 하나씩 존재한다. 해마는 특히 기억의 형성과 저장, 공간 인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중간 관문으로 작용하며, 새로운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안정시키는 데 관여한다. 만약 해마가 손상되면, 과거의 기억은 유지될 수 있지만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능력, 즉 선행기억 형성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다. 이처럼 해마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수많은 정보를 지식으로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기억력과 학습 능력을 결정짓는 중추라 할 수 있다.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해마의 작동 원리

사람이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면, 그 정보는 먼저 감각기억을 거쳐 단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이 상태에서는 정보가 몇 초에서 수 분 정도 유지되며, 이 시점에서 해마가 개입하게 된다. 해마는 이 정보를 선별하여 장기 기억으로 옮길지를 결정하며, 중요한 정보는 대뇌피질로 전달되어 장기 기억으로 저장된다. 이 과정은 수면 중 더욱 활발하게 이뤄진다. 특히 렘(REM) 수면과 서파 수면 단계에서 해마와 대뇌피질 간의 신경 활동이 교류하면서 기억의 통합과 재구성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하루 동안 배운 내용을 수면 중 해마가 다시 재생함으로써 학습된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으면, 정보는 단기 기억 단계에서 소멸되거나 왜곡되어 장기 저장에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기억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해마의 기능을 이해하고, 그 작동 환경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마와 관련된 뇌질환: 기억력 저하의 경고 신호

해마는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핵심 구조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부위의 기능 저하는 다양한 신경계 질환의 초기 신호로 나타날 수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질환이 바로 알츠하이머병이다. 알츠하이머는 노년층에서 가장 흔한 형태의 치매로, 뇌세포가 점차 죽어가며 전반적인 뇌 위축이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이 질환은 특히 해마에서 가장 먼저 변화가 시작되는데, 이는 환자가 병의 초기 단계부터 최근의 사건이나 새로운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몇 분 전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거나, 익숙한 길에서 방향을 잃는 등의 증상이 해마 손상의 전형적인 예다. 이러한 증상은 단순한 건망증과 구분하기 어렵지만, 빈도가 잦아지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뇌 질환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만성 스트레스도 해마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부신에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수치가 높아지는데, 이 호르몬은 해마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 기존의 신경세포를 손상시킨다. 이로 인해 해마의 부피가 줄어들고, 기억력과 학습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만성 스트레스를 받은 실험 동물의 해마를 관찰하면, 신경세포 수가 감소하고 시냅스 밀도도 떨어지는 것이 확인된다. 이는 인간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며, 스트레스 관리가 해마 기능 보존에 중요한 이유다.

해마 기능 저하는 우울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면증 등 정신적·정서적 질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울증 환자들은 종종 단기 기억력 저하를 경험하는데, 이는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뇌 구조의 변화와도 연결돼 있다. 연구에 따르면, 중증 우울증 환자의 해마 크기가 정상인보다 작고, 신경세포 재생률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PTSD 환자들 역시 해마 위축이 흔하게 발견되며, 이는 외상 기억의 고착과 회상의 왜곡, 공포 반응의 지속 등과 연관된다. 이외에도 수면 부족은 해마의 정보 처리 능력을 저하시키며, 장기적으로는 기억력과 집중력의 감퇴로 이어진다. 이처럼 해마는 심리적 안정, 정서적 건강, 뇌의 생리적 기능 모두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를 지키는 것이 곧 전반적인 두뇌 건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해마는 어느 정도 회복 가능성을 지닌 유연한 구조이지만, 반복적이고 만성적인 손상은 그 회복 능력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실제로 해마의 위축은 단순히 기억력 문제를 넘어서, 일상 생활의 질을 전반적으로 저하시킨다. 그러므로 해마의 건강은 단순한 기억력 유지의 문제가 아니라, 노년기 삶의 질, 자율성, 인간관계 유지 능력과 직결된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해야 한다.

해마의 역할과 기억력과의 관계

 

해마 기능을 높이는 생활 습관

해마의 기능은 유전적인 요인 외에도 환경적 요인, 특히 일상생활의 습관에 따라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좋은 습관은 해마의 신경세포 생성을 촉진하고, 기억력과 학습 능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는 것이 규칙적인 신체 활동, 특히 유산소 운동이다. 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같은 유산소 운동은 뇌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키고, 신경세포 성장에 필요한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의 분비를 촉진한다. BDNF는 해마에서 신경세포의 생존, 성장, 시냅스 연결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일주일에 3~5, 하루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해마의 부피가 더 크고, 인지 능력도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더불어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요가 역시 스트레스를 완화해 코르티솔 분비를 억제함으로써 해마 보호에 간접적인 영향을 준다.

인지적 자극 역시 해마 기능 유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학습, 독서, 외국어 공부, 악기 연주, 창의적인 활동(: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은 모두 해마를 자극하고 신경회로를 활성화한다. 특히 새로운 정보를 반복 학습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해서 활용할 때 해마의 시냅스가 강화되며, 기억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나이가 들어도 꾸준히 지적 활동을 지속하는 사람들은 해마의 위축 속도가 느리며, 알츠하이머병이나 치매 발병 위험도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에는 뇌 훈련 게임, 디지털 퍼즐 앱 등도 인지 자극 도구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특히 중장년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식습관도 해마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오메가-3 지방산(특히 DHA), 폴리페놀, 플라보노이드, 비타민 E 같은 영양소는 뇌세포의 염증을 줄이고, 산화 스트레스를 억제함으로써 해마 기능을 보호한다. 생선(특히 고등어, 연어, 정어리), 블루베리, 다크 초콜릿, 녹차, 견과류는 해마 기능에 도움이 되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또한 정제된 설탕과 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은 해마 기능 저하와 관련이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수면의 질은 해마의 건강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깊고 규칙적인 수면은 해마와 대뇌피질 간의 정보 전송을 원활하게 하여, 기억 형성과 재구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수면이 부족하거나 불규칙한 경우, 해마가 처리한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소멸되어 버릴 수 있다. 특히 수면 중 렘 수면 단계에서는 낮 동안 수집된 정보가 해마에서 재활성화되어 장기 저장소인 대뇌피질로 전송된다. 따라서 성인은 하루 7~8시간의 충분한 수면을 유지하고, 스마트폰 사용이나 카페인 섭취 등을 조절해 수면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해마 기능 향상을 위한 핵심은 운동, 수면, 영양, 인지 자극의 균형 있는 실천이다. 일상에서 이 네 가지 요소를 의식적으로 관리하면, 해마의 구조적 건강은 물론 기억력과 사고력, 나아가 전반적인 삶의 질까지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특히 30~60대는 뇌 건강을 미리 관리해야 할 시기로, 지금부터 해마를 지키는 생활 습관을 갖추는 것이 미래의 인지 질환을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